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글 읽기
제목 고통은 마음을 씻어주는 물 2018-01-06 22:14:11

2007-02-06 1298

며칠 전, 매우 가깝게 지내던 시인의 시집이 조선일보에 소개되었다. 2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 그녀가 아닌 동명이인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많이 변한 모습. 그녀는 평소 너무도 염세적이었다. 자신의 내면 어두운 부분을 더욱 어둡게 부정적으로 끌어가던 그녀만의 세계가 안타까울 때도 있었다. 그것이 제3자의 안타까움일까 싶어 2년여 소식을 끊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기개성과 자기문맥, 당당한 자기 목소리가 담긴 실험성 강한 작품으로 새로운 첫 시집을 잉태시켰다. 그 독특한 깊이로 인간의 처절한 고통이 무엇인지 가장 강력한 언어만 골라 그녀만의 언어로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야 첫 시집을 낸 그녀의 신중함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으로서 이제야 그녀를 이해하고 조용히 심심한 박수를 보낸다. 그녀는 권위적인 문단, 정치, 학연, 지연에 얽힌 분파주의와 정신을 저당 잡힌 상업적 계산과는 거리를 두고 오로지 문학성과 작품성에 기준을 두겠다고 나직한소리를 냈었다.

그녀는 한때 청산가리를 마시고 죽어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꺾어 어머니 손톱에 물들이며 살 거다/ 봉숭아보다 짙은 청, 산, 가, 리, 꽃, 물’(시 ‘어머니의 뜰’ 부분)이라며 처절하게 울부짖기도 했다. 그녀는 첫 시집 ‘봄날 불 지르다’(문학세계)에서 “제 시가 거칠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제 고통을 미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995년 어느 날 교통사고로 골반 뼈를 잘라 목뼈 사이로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맸다. 남편과도 헤어졌다. ‘머리칼에/ 신나를 바르고/ 성냥을 그어댄다/ 지글지글 타는 두개골/ 냄새의 찌꺼기가/ 봄날을 쾅 닫는다/ 누가/ 나를 맛있게 먹어다오’(시 ‘봄날 불 지르다’ 전문). 그녀는 기적적으로 다시 걷지만, 이 시에서 나타나듯 외아들을 혼자 키우며 몸에 박힌 나사못이 주는 고통으로 한 없이 죽음을 갈망했다.

그랬던 그녀는 역시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친 뒤 일생동안 고통에 시달렸던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와 가스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영국의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에게 첫 시집을 바쳤다. 장석주 시인의 평론처럼 그녀의 시는 임계점에 닿아 폭발하기 직전 고압의 언어로 꽉 차있다. 최승자 시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그녀는 최승자시인의 자학적인 언어들보다 높은 전압, 김혜순시인 보다 더 파괴적이며 강렬한 자기부정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동시에 앓은 유영금을 자살 충동에서 꺼내 다시 삶에 중독 시킨 마법의 약은 시였음이 드러난다. ‘짐승 같은 통증아/ 땅거미 지는 쑥밭에 앉아 아편 한 대 피워봐/ 까마귀 누이가 따르는 독주 한 잔 받아봐/ 취하거든 저녁달의 살을 깎아/ 토악질 나는 시를 써 봐’(시 ‘처방전’ 전문) “통증이 남아있지만 지금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시인은 “이제 통증을 내 분신처럼 아끼고 산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슬픔을 빨아 맑은 하늘에 널면/ 구름사이로 펄럭이는 슬픔 자락들/ 햇살보다 눈부시다// 해질 무렵/ 보송보송한 슬픔을 걷어/ 서랍 깊이 넣어 둔다// 우기의 나날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게/ 나프탈렌 몇 알과,’

그녀의 글을 보면 그녀의 육체적인 고통이 그녀의 문학성을 드높이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문학이란 뼈를 깎는 고통의 체험이거나 사명감이거나 뛰어난 재능이거나 그 어떤 깊은 성찰에서 나오는 숱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다시 확인한다. 아마도 그녀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표현의 수위는 한국시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높다. 자신만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울부짖던 그녀의 담담한 아픔이 무엇이 그리 대수냐고 반문하고 싶었던 지난날들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글을 보면서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으로 힘 든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facebook twitter hms

글 읽기
이전 “팬픽”을 알면 신세대 2018-01-06 22:10:50
다음 베르테르효과 [Werther effect] 2018-01-06 22:18:4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