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글 읽기
제목 베르테르효과 [Werther effect] 2018-01-06 22:18:44

2007-02-16   1468

지난해 일반인들 특히 젊은 층들의 자살사이트가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실제 동반자살 소식들이 자주 들렸었다.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젊은이들, 사소한 일들을 고통이라 여기는 젊은이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젊은이들의 나약한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일부에는 스타들의 자살을 모방한 베르테르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베르테르효과란 괴테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문학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하였다. 이 작품에서 베르테르는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1774년 당시 문학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많은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증하여 한때 책 판매를 중단하는 등 사회문제가 되었다.

베르테르효과는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처럼 되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새해 들어 가수 유니의 자살소식이 있고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들려온 탤런트 정다빈의 자살소식은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로인해 또 다른 모방 자살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되어 구정을 앞 둔 세밑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연예인은 공인이므로 그들의 자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가져온다. 연쇄반응처럼 일어나고 있는 이들의 자살은 그들 가족들은 물론 그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특히 정다빈의 자살은 이은주, 유니 등 동료연예인들의 죽음에 따른 베르테르효과가 아닐까 두렵게 하고 있다. 이은주 자살이후에는 일반인들의 자살이 평소보다 2.5배나 늘어 베르테르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 한 예였다 한다. 그러므로 더욱 베르테르효과를 걱정하며 자살한 연예인들의 가족생활을 살펴보면 여러 공통점들이 발견된다. 자살방법이 같았다는 것과 자라온 가정환경이 순탄치 않다는 점,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했다는 점, 세 사람 모두 힘겨운 가정생활 속에 버팀목이 될 만한 아버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종교에 많이 의지했었던 점도 같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택했을까 연민이 일지만 연예계가 얼마나 험난한 곳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베르테르효과를 염려하며 자살이라는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화의 중요성과 솔직한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그들은 공인으로서 자신의 불우하고 힘든 가정사를 드러내지 못해 그 부담이 스트레스를 가져왔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포진하고 있지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대화 부족이 자살을 불렀을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은 종교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지난해 옥상에서 떨어진 초등학생이 남긴 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연극, 학원, 미술, 다 귀찮다. 재미도 없는데 재미있다고 거짓말했다. 일기에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다.’ 그 글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할 사람이 있었다면 아까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살은 주변사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과 사랑이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남의 이목을 생각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야한다. 이번일은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주변에 마음을 보일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게한다.

알베르 카뮈는 ‘삶에 대한 절망이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어렵지 않은 삶은 삶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사랑할 줄 아는 포용력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삶은 긍정적일 때 훨씬 풍요로워진다고 한다.

facebook twitter hms

글 읽기
이전 고통은 마음을 씻어주는 물 2018-01-06 22:14:11
다음 삶이 즐거워지는 습관들 2018-01-06 22:23:0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