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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우누이 2018-01-08 01:23:04

여우누이 2009-10-27 1125

“아들 셋을 둔 부부가 딸을 바라는 마음이 하도 간절하여 서낭당에 가서 빌고 빌면서 딸 하나만 갖게 해 달라고 한다. 그 소리를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들었다. 부부는 바라던 딸을 얻게 되었는데 딸이 자라면서 이상하게 집안 가축들이 한 마리씩 죽어 갔다. 부부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아들들에게 밤에 외양간을 지키라고 했다. 큰 아들, 둘째 아들 모두 잠에 빠져 보지 못했지만, 셋째 아들은 여우로 둔갑하는 누이동생을 본다. 그러나 셋째 아들의 말을 가족은 믿지 않았고 결국 쫓겨나 깊은 산속 절에서 살게 된다. 어느덧 여러 해가 흘러 아무래도 자신이 그렇게 숨어살 일이 아니란 생각에 집으로 돌아와 여우누이와 사투를 펼친다.”

‘오싹한 가운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사람으로 둔갑하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대결,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완전한 승리 이야기!’이것은 우리의 고전 민담에 나오는 ‘여우누이’ 이야기다. 변신한 여우가 나타나는 전설 또는 민담은 옛날이야기 속에 단골로 등장했다. 여우의 변신은 매우 감쪽같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 주변의 사람들을 홀리고 속여 넘긴다. 인간은 미지의 자연, 미지의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공포심을 지니지만, 한편 그것을 제압하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무조건 굴복하기보다, 인간이 지닌 ‘지혜’로 그것을 극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여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셋째 아들의 행동처럼 말이다.

왜 하필 여우는 여성의 몸으로 둔갑할까? 그리고 여성으로 변한 여우의 본성을 깨닫고, 제압하는 존재는 왜 늘 남성일까?

가부장적 사회에서, 언제나 행동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남성 다음의 존재, 즉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바로 여성이었다. 따라서 ‘여우 누이’ 역시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한 결과로 인해 탄생한 캐릭터라 할 것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꾸준히 여성으로 둔갑한 여우 이야기가 독자들의 흥미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고 용모가 뛰어난 여성은 사람들을 파탄에 빠뜨리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여우 누이’로 형상화되었던 특성은 옛날이 아닌 오늘날에도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도 계속 그려지고 있다. ‘여우 누이’는 등장인물들과 한 집에 사는 인물로 밤만 되면 변한다. 낮에는 살가운 딸이자 동생이었다가도, 밤이 되면 음흉한 짐승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들이 무의식 속에 감추고 있는 일탈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사람들은 사회 규범을 지켜가며 살지만, 때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하며, 규범을 깨뜨려버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남을 통쾌하게 속여 보는 것, 규범을 벗어난 범죄 또는 마약 등의 쾌감을 맛보는 것, 부모를 속이고 일탈과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들의 욕구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밤이 되면 변하는 여우 누이는 어쩌면 그러한 원시적 본능을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약한 여성으로 변신한 여우는 사람들의 경계를 늦추지만, 한편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여우 누이가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릴감을 느끼고, 한편으로 자신이 감추고 싶어 하는, 규범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을 여우 누이를 통해 들여다보기도 하며, 결국 그 여우 누이를 죽임으로써 일반적인 규범으로 돌아오고 또한 여성에 비해 여전히 강건한 남성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출현하는 여우누이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가을이 깊어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내 안에 여우누이는 없는지와 우리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내 안에 여우누이를 삶에 있어 목표를 세운 도전이나 봉사를 위한 열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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