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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히로시마 일기-2 2018-01-07 17:48:37

히로시마 일기-2        2008-04-21 1466

둘째 날, 4월 2일

슬픈 역사를 말해주는 원폭돔과 평화의 공원을 의식한 탓인지 날씨가 많이 흐렸다.

<원폭돔>히로시마를 일본 수도만큼 유명하게 만든 원폭이 투하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는 원폭 돔! 앙상한 철골이 원폭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원폭 후 유일하게 형체가 남은 원폭돔의 앙상한 철골이 그때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평화의 고귀함을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는 원폭돔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평화 기념공원에는 원폭에 관한 여러 자료가 보존되어 있다. 평화를 갈망하는 원폭돔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듯 중국인과 프랑스인, 독일인, 인도인들 그리고 친구가 곁에 있어도 유난히 반가운 한국인 등 다양한 상춘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심각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원폭돔을 둘러보고 있었다. 중국관광객을 인솔하는 한 일본관광가이드는

“실물 보호를 위해 박물관으로 옮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폭투하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는 현재 모습 그대로 외부에 두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원폭에도 견딘 구조물을 보며 그 때까지는 끄떡없겠다 생각하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까마귀 떼들이 원폭돔 주변을 돌고 있었다. 앙상한 원폭돔과 까마귀의 조합이란 참으로 오묘했다.

<평화박물관과 평화기념공원> 박물관은 비극의 장면을 설명하는 사진 뿐 아니라 원폭에 대한 3만 점의 생생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평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평화기념 공원에 설치된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들과 위령비 앞에는 많은 외국인들도 세계 제2차 대전을 함께 공감하는 듯 애도를 표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았던 한국인인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평화의 공원에서 한국인 위령비를 찾아 그 앞에 서자 경험하지 못한 만행이지만 다시 한 번 한일 간의 비극적인 역사가 상기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끌고 갔고 일본의 공장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시켰다. 원폭 당시 희생자 7만 명중 1/10인 7천여 명이 한국인이었다 한다. 한국인 위령비는 일본 정부의 비협조로 공원 내에 건립되지 못하였고 1970년에야 그것도 한참을 찾아야하는 곳에 세워졌다한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들이 무리지어 나타났다. 우리는 말을 삼간 채 평화공원을 나서는데 유창한 일본어로 보아 다른 지역에서 온 듯해 보이는 일본인이 히로시마 역으로 가는 길을 묻고 있었다.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 준 젊은 일본 청년은

“히로시마평화공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인사했다.

그를 보며 일본인들의 애국심이 지금의 일본 부강을 가져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서야 나의 국가관은 과연 몇%나 될까 자문해보았다. 부끄러워졌다.

셋째 날, 4월 3일 히로시마에서 노면전차를 타고 가게 될 일본3경 미야지마 관광이 몹시 기대된다.

<마무리> 여행을 마치며 일본과의 적대감을 뒤로하고 가는 곳마다 히로시마 사람들은 참 따뜻하고 친절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우왕좌왕, 기웃기웃 하면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친절하게 가르쳐주곤 했다. 깨끗한 거리와 질서의식과 검소함 그것만으로도 지나간 과거는 잊고 배울 것은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로시마에서의 또 다른 감탄이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잘 짜인 관광구성이었다. 시내일정도 체계적이고 일본 3대 절경 중 하나인 미야지마코스까지 아주 절묘했다. 알찬 여행을 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1945년 8월6일, 공습경보가 해제되어 시민들이 대부분 방공호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 미국은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킨다는 명분아래 사전경고도 없이 히로시마도심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에 히로시마 전체가 파괴, 전소되었으며 인구 35만 명중 14만 명이 즉사하고, 7만 여명이 방사능으로 숨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아직까지 원폭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이후 일본은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히로시마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관광지로 조성했으며 도시를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 원폭에 대한 경각심을 세계에 알리고 평화에 대한 염원을 기도하고 있다. 과연 그들이 그럴 자격이 있을까 히로시마 여행을 통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우리나라와의 감정 대립을 여전히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원폭투하의 피해자’ 라는 의식만으로 히로시마공원에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침략행위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원자폭탄에 대한 처참함과 평화에 대한 갈망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히로시마 문화유적지 탐방을 통해 애국심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으며 여행을 열린 마음과 변화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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