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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며느리의 영향력 2018-01-07 23:12:16

며느리의 영향력

2009-02-03 1176

구정명절을 보낸 후 몇몇 후배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 중 의사를 남편으로 둔 30대 후반인 후배가

“설날 무사히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심란하고 안타까운 설날을 보냈습니다.” 라며 어두운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시집식구들에게 어떻게든 영향력 있는 며느리가 되어보려 노력하다가 지쳐, 이번 설날에는 남편이 하자는 데로 여행을 떠나 보았지만 어찌나 마음이 불안하고 편치 않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시댁에서 전화가 올 것만 같고, 누군가 찾아올 것만 같아 집에서 조용히 지내자고 했지만 남편을 꺾을 수 없어 따라 나섰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도 의사인 아들을 당신이 만들었는데 시어머니의 말씀을 제때 들어주지 않는다며 오지도 말라 하셨다는 것이다. 일 년 쯤 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명절이나 생신 때는 물론 주말마다 음식을 만들어 싸들고 혼자 부지런히 시댁엘 갔으나 그 때마다 문전박대 하셨다고 했다. 그래도 가족끼리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싶어 남편을 설득해 아버님을 만나게 했고, 아버님은 무조건 무릎 꿇고 들어가라고 해 일이 마무리 되었단다. 그 당시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후배의 노력보다 남편의 마음이 풀릴 때가 되어 해결되었던 것이다. 혈연관계는 마음이 스스로 풀려야 해결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참으로 씁쓸했던 경험 덕분에 이번 설날은 마음을 편히 먹어보려했지만 영 안 되더란 이야기였다.

“1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외며느리로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하고 아이 셋을 낳아서 키워도 저는 아직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일 뿐이니 며느리로서 나의 영향력은 어디까지 일까요? 시댁과의 일에 어떤 메뉴얼이 있어서 이럴 때는 이렇게 행동하라고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역시 현명함이란 주제와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분석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한 후배는 불편하겠지만 나의 힘으로 안 되는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큰 시누이가 의절한 상태라 명절에 딸들이 다 와야 하는 시어머니 삶의 공식에서 이번 설날에는 딸 둘이 모두 안 와 더 불안정한 시어머니로부터 여러 번에 걸쳐 날아오는 화살을 그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다고 투정부리시는 것들을 받아드리며, 이런 명절이 언제쯤 끝날지 착잡했다고 한다. 이구동성으로

“시집과의 일은 정신 반쯤 나간 사람처럼 그냥 생글생글 웃어야하는 건가요?”하는 후배들을 보며 나도 한 수 거들었다. 10여 년 전 홀로 된 올케가 이번 명절에는 아이들을 안 보내겠다며 친정어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명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또 한 후배는 경험이 없음을 공격하는 정적들에게 오바마가 한 말을 인용했다.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가 중요하다.’라고…….

그렇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고부간 갈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부모와 잘 지내는 대신 시누이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혀 다른 생활을 해오던 남남이 만나 한 가족이 되어 겪는 며느리로서의 고민은 영원한 숙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안 살 거라면 몰라도 살 거라면 그냥 정신 반쯤 나간 사람처럼 생글생글 웃자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치는 그 영향력이 얼마인데…….

그 길을 먼저 걸어 온 선배로서, 맘 졸이고 아파하며 시집식구들과의 갈등을 풀어나가려고 애쓰는 후배들이 어찌나 예쁘고도 안쓰럽던지…….

시집 식구들과의 갈등은 불편함보다 불안함이 더 문제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어둡고 깊은 동굴 입구에 서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확 등 떠다밀거나, 동굴 속에서 무언가 나타나 휘감을 것만 같은 기분! 그것이 우리 며느리들이 겪는 고통이다. “피할 수 없을 땐 즐길 수 있는 대범함을 키워야 할 것이다.”란 말 밖에 해 줄 수 없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지혜롭게 잘 견디는 훌륭한 후배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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