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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름답게 살다 가야지 2018-01-14 16:26:10

아름답게 살다 가야지               2012-08-28 948

가을을 알리는 바람이 분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이 일렁인다. 달려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립다. 누군가가 이처럼 그리워본 적이 있었던가.

새벽 5시,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가던 중 핸드폰 벨이 울렸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아버지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전화였다. 동승한 분들이 다른 차로 옮겨 탈 수 있도록 차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동승했던 한 분이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냐고 물었다. 머뭇거림 없이 “작은 거인이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아버지는 작은 거인이셨다. 자그마한 체구에 말씀이 별로 없으셨지만 자식들에게나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셨고 말 한마디 한마디는 상대방에게 큰 힘을 주시어 존경 받는 분이셨다. 욕심 없이 사셨던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편안히 가셨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버지를 뵈며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꺼억거렸지만 너무도 편안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에 아버지처럼 갈 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답게 살다 가신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아버지는 가시면서 까지도 많은 깨달음을 주고 가셨다는 생각에 슬픔을 넘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천상병 시인과 천상병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귀천>을 자주 읊으셨다. 시를 좋아하고 천상병시인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귀천의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라고 하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에서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노을빛’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이미지들이다. ‘이슬’처럼 우리 인간의 삶은 ‘노을빛’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천상병 시인은 이러한 우리의 유한한 삶을, 그리고 고통과 슬픔이 늘 함께하는 우리의 인생을 ‘기슭에서 놀다가’ 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소풍’으로 표현했다. 결국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지상에서의 삶을 덧없음으로 슬퍼하지 말고 잠시 소풍 나온 것으로 생각하며 살다가, 종국에는 진정한 자유와 영원함이 있고 진정한 안식이 있는 ‘하늘’로 귀의하고자 한다고 표현했다. 죽음을 강한 초월적 의지로 드러내며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한번 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는 죽음에 대한 일회적 시간관을 갖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숙명임을 알고 있음에도 거부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시 속에서의 죽음 역시 언제나 회피하고, 거부하고 싶은 부정적인 대상으로 그려지곤 한다. 긍정의 대상으로 노래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천상병 시인의 시를 보면 죽음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천상병은 ‘동백림 간첩단’사건‘의 핵심인물인 강빈구가 간첩인 것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여 정신병원에 들어갈 만큼 정신적, 육체적인 황폐화를 겪었다. <그 날은 새>라는 시 ‘이제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 같이/ 당한 그날은…‘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천상병시인은 암담하고 황폐한 현실 앞에서 저항보다는 순수 서정의 세계를 통해 그 상처를 시로 승화시켰다. 일부에서는 가난을 청빈이라 노래한 시인의 무능함을 질타하기도 하지만 그는 가난을 거부하고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아 하며 가난은 운명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얽매였다면 그는 초월적인 이미지의 시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며 천상병 시인의 표현대로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진정한 안식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삶이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천상병 시인처럼 아버지 또한 삶을 긍정적으로 보시고 초월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에 천상병 시인이 오버랩 되어 필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초월적인 삶은 내면세계의 갈등을 안으로 삭이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처럼 천상병 시인처럼 가는 날까지 아름답게 살다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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