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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을 앞두고 2018-01-13 11:55:22

4월을 앞두고 2010-03-30 1117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이 작품은 T.S 엘리엇의 총 5부로 구성된 대 서사시 황무지 제1부 앞부분으로 정신적인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 없는 성,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해 표현한 詩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돌아오고 어렵고 힘든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며 망각의 눈에 쌓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트고 살아나야 하는 4월은 잔인하다고 했다. 겨우내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식물들이 생명을 노래하며 움을 틔우는 아름다운 4월을 엘리엇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여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유독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것은 한국근대사에서 4월에 가슴 아픈 사건들이 가장 많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변수나 혁명 변고 그리고 정치가들의 구속과 경제적 침체 현상들이 4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여 그렇게 인용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대표 작가 엘리엇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귀화하여 영문학사와 미문학사에 동시에 올라 있는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비평가들은 엘리엇의 황무지를 현대문명의 황폐함을 풍자한 시로 읽으며,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전후 세대의 정신적 공허감을 노래한 시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이유는 현대문명의 폐해가 아니라 엘리엇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장베르디날이라는 소르본느 재학생이 1차 대전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그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번이나 결혼을 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는 동성애자는 아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베르디날을 잃은 후 그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영심과 바람기에 히스테리컬한 비비안과 결혼하여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 당시 작성한 시가 황무지였으니 개인적인 상실을 노래한 시라는 것에 무게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월이 아니더라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달이 돌아온다면 얼마나 잔인한 달이겠는가. 꽃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말하지 못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기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4월을 앞두고 너무도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났다.

해군 초계함 침몰 사건이다. 마음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잠을 설쳐서 되는 일이라면 아예 눈 한 번 붙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니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아니 아니 영원한 불면증에 걸린다 해도 좋으니 없었던 일이 된다면 좋겠다. 보도를 접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이리도 아픈데 건강한 자식을 잃은 부모 형제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더하여 고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의 죽음이 또 다시 삶에 대해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4월을 앞두고 들려오는 비보는 희망을 노래해야할 봄을 우울하게 한다.

슬픔은 병이 되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많은 의혹을 품게 하는 이번 초계암 침몰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빠른 대응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아직 생존자가 있다면 조금만 더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기도해본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이제 좋은 소식들만 들려올 4월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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