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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길 2018-01-08 01:13:11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길

2009-09-01 1291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 떨구고 있을 때 //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시 전문-

어릴 적 여름날 풍경에서 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외가의 양옥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이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싹을 틔워 겨우내 메말랐던 줄기 속으로 푸른 의식을 밀어 올리면 어느새 푸른 잎들에게 생명이 부여되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외가를 방문하면 어느새 2층 양옥 네 벽면을 모두 감싸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반기곤 했다. 그 당시는 담쟁이덩굴의 의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살아가는 동안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삶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담쟁이의 강인한 생명력을 떠올리게 되었고 혼자가 아닌 함께 손잡고 간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곤 했다. 물 한 방울 없는 그것도 시멘트는 물론 철판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르는 끈질긴 생명력 앞에 그만 숙연해지곤 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두 분 대통령을 잃었고, 법무부장관 임명과 미디어법 통과를 두고 진통을 겪은 일 그리고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쌍용차 사태 등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났다. 이 모든 것들은 공동체 의식의 부재에서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많은 지도자들로 인해 불신의 늪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을바람이 뭔가 새로운 희망을 함께 몰고 오는지 여기저기서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채 대전고검장이 지난 12일 취임식에서 최근 지휘부 공백 사태를 빚었던 검찰의 복잡한 상황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며 검찰이 직면한 상황을 담쟁이가 벽을 오르는 형상에 빗대면서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31일에는 전 KBS 정연주사장이 현 엄기영 MBC사장에게 원칙이 이기는 사회를 위해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말라”는 서한을 보내며 위의 ‘담쟁이’ 시를 소개했다. ‘역사 발전을 위해 포클레인으로 당신을 강제로 들어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텨야 합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많은 벗들이 당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한다. 세상을 위해 혼신의 힘을 불사를 수 있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끼게 되면 대부분 자리를 그만 둔다. 옛날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직언을 하다 안 되면 낙향했던 충신들도 눈과 귀를 막고 살지 않았던가.

담쟁이는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묵묵히 수없이 많은 잎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이러한 담쟁이의 속성을 시로 담아 올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작품이 가을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화자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 희망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가을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겨울을 생각하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걱정이 늘어갈 터이지만 왠지 올 가을부터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뭔가 희망을 안겨주는 바람이 불어올 것만 같아 가을바람이 더욱 반갑기만 하다. 벽이라고 느끼면 절대 넘을 수 없는 것이 벽이다. 이제 함께 손잡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화합하며 더불어 가는 가치를 다시 확인해야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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