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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앎과 삶이 하나인 선생님 2018-01-14 16:17:40

앎과 삶이 하나인 선생님     2012-06-12 1310

박경리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4년! 그동안 뵈러가야지 벼르기만 했던 고 박경리 선생님의 묘소를 다녀왔다. 선생님이 누워계신 통영시 산양의 5월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유난히 싱그러웠다. 선생님은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과 인자한 눈빛으로 반겨주시며 허겁지겁 달려가는 삶을 관조해보라는 듯 기념관 입구에서 선생님의 약력 표지판으로 마중 나와 계셨다. 선생님은 당신의 발자취와 문학관과 세계관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진 기념관을 둘러보게 하신 후 구불구불 이어지는 잘 닦여진 황톳길로 인도하셨다. 황톳길 좌우에 세워진 잘 다듬어진 화강암석에는 낯익은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와 어록들이 반기어 선생님이 곁에 계신데도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켰다. 문득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드디어 선생님이 누워 계신 묘소에 다다르자 선생님의 묘소를 바라보고 선 왼편에 놓인 돌에 새겨진 글귀가 또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였다. 문학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일침을 가하시던 글귀였다. 그 글은 문학인만이 아니라 예술인들 모두에게,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본분에 맞게 행동하며 이해 타산적으로 살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문인들은 가난하니 결코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셨던 고 박완서 선생님과 박경리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지며 진정한 문학인의 문학정신을 다시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의 묘소는 장식 하나 없이 상석만으로 조촐하고 단아하게 꾸며져 생전의 선생님의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생전과 가신 후의 모습이 일관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선생님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못하였다. 6.25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먼저 보내는 불행을 겪으셨고 성장과정도 순탄하지 못하였지만 그것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시종일관 적의에 찬 감정으로 어머니를 학대하던 아버지를 보며 자라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괴로워하는 등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힘든 성장과정을 보냈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을 잡아준 것은 책이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문학을 만났던 것이다.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슬픔까지 이겨내도록 해 준 것이 바로 책읽기였고 문학이었다. 선생님은 문학을 위해 목숨을 건 고투와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누구나 흠모하고 존경하는 참 문학인이 되셨다.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 사회에 지식인들은 많으나 그들 중 앎과 삶이 하나인 사람을 많지 않다. 선생님은 진정 앎과 삶이 하나인 분이셨다. 뼛속까지 아파보신만큼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과 생명의 존귀함을 알게 되신 선생님은 사람을 존중하셨고 생명과 더불어 나눠야할 땅과 물을 아끼고 섬기셨다. 그로인해 약하고 가녀린 것, 죽어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런 만큼 선생님은 생명존중사상가로서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이다”라고 하신 문학의 거목이자 인간적인 거목이셨다. 특히 내세우고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으셔서 더더욱 가슴 먹먹한 존경으로 다가가게 했다. 거목은 거느린 가지와 잎이 많은 만큼 드리우는 그늘도 큰 법! 선생님은 가셨어도 선생님이 뿌리 내린 거목의 그 그늘 아래에서 많은 문학인들이 문학인의 정신을 다시 되새길 수 있게 하셨다. 선생님은 물질의 만연과 이해타산 중심의 삶은 정신을 황폐화하고 사회를 피폐하게 한다고 걱정하셨다. “자존심은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받드는 것”이라며 물질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버리는 세태를 마음 아파하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가셨어도 선생님 생전의 모습과 정신은 고스란히 남아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심오한 생명존중사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위안을 주는 문학정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는 생명이 되어 주고 계셨던 것이다. 선생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앎과 삶이 하나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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