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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안의 나무이야기 2018-01-07 14:10:03

2007-06-20 1278

약 10여 년 전 후배 사무실에서 그림인 듯 사진인 듯 구성인 듯 절묘한 작품이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림 안으로 강하게 잡아끄는 어떤 흡입력이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니 작품은 유화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진이었다. 어스름한 저녁 빛이 지평선에 걸린 작품이었다. 그 이후 한동안 사진 찍기에 몰두해 있었다. 특히 겨울과 봄 사이 얼음을 터트리며 졸졸졸 봄을 알리는 소리들을 찾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얼음사이에 핀 복수초를 찾아 눈조차 녹지 않은 백담사 길을 걷다 가볍게 입은 옷차림으로 동상에 걸릴 뻔 했던 기억, 새벽안개를 담겠다고 대성리 강가를 찾아 잠 설치는 것도 행복해했다. 사진은 피사체 그대로를 찍어내는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찍는 이의 감각과 기술이 필요하고 마음과 정성이 혼으로 남는 창작이라 할 수 있다. 며칠 전 5월17일로 마감된 ‘내안의 나무이야기’라는 사진전을 이야기하고 싶어 꺼낸 사진 이야기가 개인적인 이야기로 길어졌다.

우리와 너무도 친숙한 방송인 이상벽씨의 첫 번째 사진전 ‘내안의 나무 이야기’가 서울신문사 갤러리에서 열렸었다. 2년 전 어느 날, 방송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고 1년 8개월 동안 수동 카메라를 들고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찍었다고 한다. 동트기 무섭게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하루에도 몇 굽이씩 산허리를 돌아 개울을 건너다니며, 혹은 무릎으로 바위를 기어오르며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작품 하나하나는 사진이라기보다 회화에 가까운 예술작품이었다.

사계 속에 꽃이 피고 신록이 무성하고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졌다. 나무사진 마다에는 계절마다 다른 바람소리가 들렸다. 세찬 바람결에 나무들이 몸체 흔들리는 사진에서는 절로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림이 아닌 사진인 만큼 너무도 생생했고 그 구도 또한 입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하나 같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전이었다. 그가 쫓은 것은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구불구불 논두렁을 경계로 색깔을 달리하는 논배미 한가운데 홀로 선 나무, 높은 지붕을 인 건물의 외벽에 주룩주룩 빗물처럼 그림자를 내린 나무, 머리를 풀어 와르르 여름의 기억을 쏟아내는 가을나무, 가을 햇살이 포플러 나무 끝동의 노랑 잎과 억새풀 흰 꽃 끝에 머문 나무, 가을 저녁볕이 벗은 가지 끝에 새털처럼 남은 나무들은 모두가 사연을 담고 있었다. 하루 종일은 다반사, 일 년 동안 계속 한 나무만 찍은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무가 말을 걸어오더라고 했다. 수동 카메라로 한 장 한 장 찍는 피곤한 작업을 고수한 ‘쟁이 정신’의 구식촬영방식을 고하는 만큼 그의 사진은 1년 8개월 실력이라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 정도 열정이라면 가능했겠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사진촬영에 최적의 광선을 만날 수 있는 새벽과 일몰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 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리고 역광을 적절하게 이용해 환상적이고 입체적인 색감으로 표현해낸 솜씨, 사계절을 담은 그의 사진 속엔 그가 흘렸을 땀방울의 흔적이 선명했다. 나무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려는 그의 메시지 거의 완벽하게 전해졌던 작품들이었다. 특히 트리밍 없이 현장에서 끝내고,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 그의 사진작업은 ‘고난’ 그 자체였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코피를 쏟기 일쑤였다는 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품들이었다. 사진작가의 길을 택한 이유는 늘 창작에 대한 꿈이 있었고 은퇴한 뒤 내 자신의 전부를 거는 것, 예술을 하는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사진으로 향하게 했다고 한다.

이상벽씨의 사진전을 보며 다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전부를 건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은 어떠한 곤란이 와도 해 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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