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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은 요즘 뭐 하고 사세요? 2018-01-06 22:46:07

2007-05-30 1116

매년 돌아오는 스승의 날! 스승의 날만 되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제지간이라는 고결함이 최근 몇 년째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음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금의 필자가 있기까지 가장 학문적인 영향을 많이 주셨던 선생님을 5월이면 스승의 날을 빌미삼아 찾아뵙곤 한다. 오래된 막역한 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대화가 통하듯 선생님과도 그랬다. 그런데 그날 우연히 함께하게 된 까마득한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후배가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교사라면서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스승으로서 도리어 불편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갈수록 사제지간의 끈끈한 정은 사라지고 언제 적 선생님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선생님이나 제자나 쓸쓸해지고 말았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모임에 가기위해 전철을 타려는데 마침 몇 년 전 중학교에 재직 중일 때 가르쳤던 제자가 어느덧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 늠름한 모습으로 곁에 친구들과 서있는 것을 보고 반갑고 대견해 말을 걸었다 한다.

후배 : 너 정말 오랜만이구나.

학생 : (어색하게)예, 예, 그러네요.

후배 : 너 중학교 때 보다 정말 많이 컸구나. 보자, 벌써 몇 년이냐?

학생 : (기억을 더듬는 듯)글쎄요?

후배 : 하하하, 그때 너 장난꾸러기였는데…….

학생 : (머리를 긁적이며)제가 그랬나요? 그런데……. 형은 많이 늙었네요.

후배 : 뭐? 형?

(속으로 요놈 봐라하는 생각이 들며 씁쓸해지기 시작했지만 정색을 하고)

그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형도 뭐… 괜찮다. 헛! 헛! 헛!(헛기침)

학생 : 그런데 형은 요즘 뭐 하고 사세요?(학생이 묻는 말이 가관이었다)

후배 : 뭐하고 사냐고? 허 참! 지금도 여전히 너 같은 애들 가르치며 먹고 살지.

그때서야 녀석이 자신을 가르친 것을 기억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배는 그만 모임 가는 것을 접고 포장마차로 달려가고 싶었다고 했다. 학생도 너 같은 애들 가르쳐서 먹고산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맏형 친구인 줄 알았다고 죄송하다고 싹싹 빌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 친구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분명한데 아는 척 했더니 “아줌마 누구세요”하더라는 것이다. 그 후 제자들이 먼저 말 걸어오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아는 척 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아서도 안 되며 선생님은 화장실도 안 가는 순결하고 고귀한 분으로 생각했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특히 기억력이 한창 좋을 청소년들의 기억저장창고에는 무엇이 기억되어 있는 것일까? 한마디씩 거들었다. 방과 후 여기저기 학원을 옮겨가며 공부하느라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억해야하는 기억저장의 자리는 이미 만원이라고 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땅에 떨어져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학교 선생님들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바로 열심히 가르친 제자들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선생님이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제자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을 것이다. 오늘은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선생님들께 안부전화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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