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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제의 나라 터키 -문화칼럼 기고글 2018-01-06 18:55:52

2006-07-01  조회 1529

독일 월드컵! 스위스와 3차전을 벌이던 24일 새벽은 축구를 넘어‘형제의 나라’한국과 터키의 우정이 다시 꽃피었다.‘터키’하면 우리는 이스탄불, 지중해의 나라, 형제의 나라 라는 수식어를 떠올리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터키가 왜‘형제의 나라’가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 대부분은 6.25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해서일거라 여긴다. 놀라운 사실은 15,000명이 넘게 파병되었던 터키군은 대부분이 자원병이었고 그중 3,500명이 사망(미국 다음 사상자)하여 462명이 현재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묻혀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했고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 터키인들은 터키를 ‘투르크’라 부른다. 투르크는 과거 고구려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의 다른 발음이다.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오스만 투르크제국을 건설한다. 나라와 나라사이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지만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서로‘형제의 나라’라 불렀고 지금의 터키에 자리 잡은 그들은 여전히 고구려 후예인 한국인들을‘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중 고교 역사 교과서는‘돌궐’에 대해 몇 줄만을 할애하고 있다. 따라서 돌궐이 이동해 터키가 되었다거나 훈족이 이동해 헝가리가 되었다는 얘기는 전무하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터키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과목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이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형제의 나라’라 칭하며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은 대단히 환호하며 큰 환영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냉담했고 터키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른다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돌아가 자국 신문에‘이제 짝사랑은 그만 하자’라는 글을 기고했고 터키와 우리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바로 두 나라가 나란히 4강에 올라 3, 4위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대구 월드컵경기장은 결전의 한 판이라기보다는 우호의 한 마당이 되어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 될 수 있었다. 그것은‘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은 터키를 위한 한국의 사랑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에서 나타난 터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더 열정적으로 터키를 응원했다. 5천여 명 관중은 태극기와 터키국기를 함께 흔들며 두 나라를 응원했다. 대형 터키 국기가 한국관중석에 펼쳐지자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터키인들은 승리보다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 감동했다. 터키 정부는 그때 받은 대형 터키국기를 수도인 앙카라의 한 박물관에 소중히 전시하고 있다 한다.

이후 두 나라의 우호관계는 민간과 정부 모두 더욱 돈독해졌다. 그 때의 은혜를 갚겠다고 독일 월드컵에서 터키 응원단은 본국 및 독일 거주 터키인들까지 합세해 붉은 악마와 더불어 공동응원에 나섰다. 이제 터키와 한국은 오해를 풀고 더욱 돈독한 우정으로 외교로까지 이어가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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