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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독으로 간 광부와 간호사가 구한 나라 2018-01-06 18:52:32

2006-06-22  조회 1646

196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 소득은 87달러였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약13,000달러가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동란까지 맞게 되어 너무도 어렵고 혼란했었다. 그런 가운데 5.16혁명이 일어났고 가장 시급한 일은 가난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개발만이 살길이라며 경제개발계획을 세웠으나 자금이 문제였다. 이 나라 저 나라에 차관을 신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1961년 11월 서독에 차관교섭사절단을 보내어 1억 5천만 마르크의 차관을 얻는데 성공한다. 우리나라가 유치한 최초의 차관이었다. 당시 전후 재건사업으로 복지사업을 추진 중이던 독일은 일손이 부족해 우리나라에 차관을 빌려주는 대신 광부와 간호원들을 지원해 달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8:1의 경쟁률로 지원하였고 1963년 11월 제 1진의 광부와 간호사 150명이 출발하였다. 간호사와 광부로 간 그들은 결국 몸으로 보증을 선 볼모가 되었다. 덕분에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받게 되었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은 그렇게 하여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들이 뿌린 눈물이 우리 민족사에 그토록 값진 금자탑을 쌓아주었던 것이다. 서독으로 간 광부와 간호사들은 우리의 저력인 성실함과 헌신적인 봉사에 독일 사람들이 감동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고 낯선 땅, 말도 통하지 않는 설움을 서로서로 위로하며 의지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서독에 정착했다.

지지리도 못살아 보릿고개의 한을 안고 이역만리 광부와 간호사로 떠났던 그 눈물의 삶이 어언 쏜살같이 흘러 43년이 되었다. 그리고 2006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월드컵 16강을 바라보는 태극전사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교민들은 태극전사들의 사기를 더 북돋우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축구공만 봐도 가슴이 벅차다는 독일교민들은 가슴 속 응어리들을 모두 풀어내며 그 못났던 조국이 어느 날 훤하고, 어엿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왔다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메운 붉은 물결에 한없이 감격했다.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 숨은 공력 자들이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의 아픔이 어떤 것이지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그 당시 서독수상은 박대통령과 공감하는 바가 많아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이 오고갔을 것이다. 독일도 1920년대 말 경제가 어려웠을 때 실업자구제책으로 아우토반을 건설해 독일경제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조언으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도로위로 달릴 자동차 공업이 육성되었고 정유공장이 건설되고 따라서 석유화학공업이 발전했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따른 제철공장이 들어서고 기술 인력이 양성되었다. 이처럼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독일에서의 월드컵축구는 교민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참으로 뜻 깊다.

교민들은 붉은 색 응원 부대와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 응원소리 드높이면 가슴은 멍하고 콧등은 찡해져 설음과 감격의 눈물이 쉴 새 없고 대 토고 전에서 역전승 했을 땐 얼싸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한다. 우리 교민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을 풀게 해 준 이번 월드컵 경기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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